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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판 글 - 귀농하자는 남편과 싫다는 아내입니다. 본문
결혼 3년차 아이없는 부부에요.
제목처럼 귀농하자는 남편때문에 몇날며칠 머리 싸매고 있습니다.
남편의 동의하에 글을 올리고 있어요.
간단히 저희 소개를 하자면
서울 소재 sky 중 한 곳에서 같이 석박사하면서 만나서 결혼했고, 지금 같은 연구원, 다른 부서에서 근무중입니다.
60살까지 정년 보장되는 곳이고, 각자 본인들 일에 만족하고 있었습니다. 이주전까지는요.
남편도 저도 서로에게 결혼 결심한것이 같은 관심사, 비슷한 생활 패턴, 연구원이라는 특성상 일과 가정 모두 안정적으로 꾸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었죠.
각자 자기 일에 대한 프라이드 많고, 꿈도 큽니다.
아이도 2년후에 갖기로 서로 동의했구요.
그런데 갑자기 2주전부터 남편이 회사를 관두고 고향으로 내려가 부모님 일을 물려받아서 하겠답니다.
시댁은 전라남도 끝에서 김양식을 하십니다.
길 안밀리고 차로 빨리 가면 6시간입니다. 명절에는 기본 10시간 이상이죠.
남편 가족은 시부모님+(故)미혼 형+기혼 누나 입니다.
작년 연말에 시부모님과 김양식을 하시던 시아주버님이 돌아가신 후 두분 부모님이 전담해서 하게 되셨죠.
그래서 남편은 이제라도 내려가서 돕겠답니다.
그러면서 너무 쉽게 저도 같이 내려가서 살자고 해요.
신랑은 고등학교때부터 서울로 유학와서 십년 넘는 세월을 타지생활했습니다.
그렇지만 본인 역시 시골 생활을 싫어했었고, 아주버님 돌아가시기 전까지만 해도 형이 거기 있어서 다행이다, 자기는 절대 거기서 못산다 라고 했었던 사람이에요.
그런데 한순간에 이렇게 변했어요..
저는 태어나기도 서울에서 태어났고 친가 외가 모두 서울이고, 다른 지역에서 사는 것에 대한 부담감도 사실 있고,
그게 또 전남 시골마을(편의점, 커피숍 찾기도 어려운, 버스도 시간 정해서 하루에 몇번 다니는 동네에요.)이라는 것도 너무 막막해요.
또 박사까지 해가며 공부한 것도 너무 아깝습니다. 이러라고 저희 부모님이 제 뒷바라지 해주신것도 아니구요.
절대 내려갈수 없다고 했습니다.
위의 얘길 했더니 그럼 주말부부 하잡니다. 그럼 언제까지? 라고 물어보니 제가 회사 그만둘때까지랍니다.
공부한거 안아깝냐고 했더니 더이상 미련없데요.
아이는 안낳을꺼냐고 했더니 그건 2년후에 생각하쟤요.
너무한거 아니냐고 했더니 자기도 자기 인생 살 권리가 있데요. 그래서 저에게도 주말부부 하면서 제 인생 살으라고 하는거구요.
너와 내 인생이 아니라 우리 인생이 아니냐고 했더니 지금은 그렇게까지 생각못하겠데요.
그럼 우리가 왜 결혼은 했냐, 따로 살지, 그리고 결혼당시에 우리가 계획했던 거랑 너무 다르지 않냐고 했더니
계획은 언제나 수정가능하다고 얘기합니다.
이번 주에 사직서 내겠다는데, 정말 결심이 너무 굳어요 이사람..
이혼은 아직 생각도 해보지 못했어요. 이 사람 마음 돌리는 것만 생각하고 있구요.
시부모님, 친정부모님도 지금 모두 반대하고 있는 상황인데, 본인만 이러고 있으니 어찌해야할까요..
댓글 부탁드러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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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에 글을 올리고 많은 분들의 댓글, 남편과 함께 다 읽어보았습니다.
진심어린 댓글에 정말 감사드려요. 답글을 달아야 하는데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화요일 저녁부터 오늘 아침까지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퇴근하고 또 한바탕 입씨름을 벌이다 결국 제가 시어머님께 다시 전화를 드렸어요.
어머니 목소리 듣자마자 저도 모르게 펑펑 울며 말씀드렸습니다.
저이가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금요일에 사직서 낸다고 했다구요.
시부모님께선 일요일에 타이를만큼 타일러서 남편이 마음 바뀐 줄 알고 계셨더라구요.
일요일 저녁에 저랑 통화할때도 그렇게 알고 계셨었고요.
그게 아니란걸 옆에 계시던 아버님이 들으시고는 바로 남편 바꾸라고 하셨는데 핸드폰 너머로 큰 소리 내시고는 끊으셨어요.
부모님께 전화 드리지 말라고 남편은 화내고, 서재 들어가서 안나오더라구요.
어머님은 다시 전화오셔서 애 잘 달래라고 하셔서 제 능력으론 부족한것 같아 너무 힘들다고 얘기하고 끊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아침에 출근해서 멍하니 있는데, 아버님께 전화가왔어요. 지금 서울오는 버스 타셨다구요.
집 근처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 퇴근하고 바로 남편 데리고 집으로 오라시기에, 남편이랑 같이 오후 반차 내고 센트럴시티에서 도착 버스 기다리고 있었어요.
버스에서 두 분 내리시자마자 어머님은 남편 붙잡고 우셨구요, 아버님은 남편 머리 한대 크게 치셨구요.
두분, 밤새 한숨도 못 주무셨다고 해요.
점심도 못드셨을텐데 밥생각도 없다고 하시고 집에 도착해서는 몇 시간동안 계속 얘기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지만 아버님도 결국 눈물보이시고, 어장은 다른 사람한테 임대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큰아들도 허망하게 보내고, 너마저 내려온다면 내가 그동안 살아왔던 인생이 모두 헛되게 느껴질거라고..
이럴줄 알았다면 진작에 그만둘 것을, 내 욕심때문에 아들 둘다 잃는다면서 한참을 우셨어요.
그러면서 남편도 조금씩 마음을 바꾸었어요. 당장 내려가겠다는 소리는 안하겠으니 조금씩 일을 돕고 배워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아버님께서 그럼 당장 양식장 다른 사람한테 넘기는건 무리일테니 매 주말마다 내려와라, 몸이 부러지더라도 단 한주도 거르지 말고 내려와라, 네가 하는 연구가 대단히 어렵고 힘든것인줄은 알지만 그렇다고 김농사 짓는것도 만만하다고 생각하지 말라시면서 저에게도 주말은 니 남편 없다고 생각하고 살으라고 하셔서 알겠다고 했습니다.
조건부 합의인 셈이죠.
집에서 간단히 식사하시고 피곤하셨는지 일찍 주무시고, 남편이랑 저랑은 다시 긴 얘기를 나눴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연구원에 들어왔는데, 점점 피동적이 되어간다.
올해 초 진급에서도 누락되고(저희가 보기엔 상도 받았고, SCI 논문 발표수도 부족하지 않아서 남들보다 먼저 진급할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결정적으로 남편 성격이 남한테 아부하는걸 전혀 못해요. 진급엔 그런것도 간과할수 없는데..)
솔직히 수재소리 듣고 자라고 일하다가 자꾸 뒤쳐지는 느낌이 들어 스스로가 너무 못나보이고,
그에반해 너무 잘 적응하고 일에 재미를 느끼는 저에게 상대적 박탈감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존심 때문에 말도 못하고요.
듣다가 저도 울고 남편도 울고..
김양식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일인지 자기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알지만, 지금 생활의 탈출구로는 그게 최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자기도 생각이 짧았던것 인정하였구요.
저에게도 그렇게 행동한거 어린애 같은 행동이었다고 사과했습니다.
저도 부부간에 깊은 대화를 할수 없었던 우리 생활방식에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같이 고쳐나가기로 했습니다.
어느분이 그러셨죠. 이번에 잘 넘어가도 다음에 또 그러면 어쩌냐고, 믿고 살수 없을거라고요.
'나 똑똑한거 알지? 한번 혼난건 다신 안그래. 습득이 빨라'라는 장난같은 말로 다짐도 받았구요.
많이 오글오글 거리지만, 남편에게 그랬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젤 똑똑한줄 알고 살지? 연구원엔 우리보다 더 잘난 사람 너무 많아. 그 사람들이랑 비교하고 살지말고, 우리가 처음 여기 들어왔을때 같은 마음으로 우리 일에 충실해보자.'
(말해놓고 온몸에서 닭살이...)
시부모님 올라오셨다는 말에 친정부모님께서 점심 대접하신다고 하셔서 오늘 오전도 반차내고 같이 식사하고 좀전에 터미널에 모셔다 드리고 와서 이렇게 후기 올립니다.
진짜 귀농은 남편이 주말마다 적응을 잘하면 올 겨울에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저한테 그러시더라구요.
'다른 일꾼들보다 더 힘든일 시킬테니 귀농소리 싹 사라질거다. 걱정마라.'
정말 적응 잘해서 겨울에 내려간다고 하면, 저도 나름의 방법을 모색해봐야겠지요.
대학으로 가는 방법도 있을테구요.
이혼은 여전히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댓글 주신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댓글이 남편 마음 돌리는데에도 큰 몫 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읽으시는 분들은 정확한 결론이 나길 원하셨겠지만, 지금 저에게는 이만큼으로도 충분합니다.
남편말대로 계획은 언제나 수정가능하니까요ㅎㅎ
어떻게 끝내야 하죠...?ㅎㅎ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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